| 문화재명 | 이원익영정 | ||
|---|---|---|---|
| 분류 | 지정유산실 | 하위분류 | 이원익 |
| 종류 | 회화 | ||
| 지정번호 | 지정 도 유형문화재80 호 | ||
| 연대 | 조선시대 | ||
| 소재지 | 소하동 | ||
| 파일 | |||
| 내용 |
평양의 서리들이 이원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에 모셔졌던 영정이다.
제작 시기는 그가 1595년 우의정에 임명되어 조정에 올라올 때를 전후한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영정의 좌측상단에 있던 화기와 오리집에는 수록된 <서기성생사철환도상배후>과 내용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그림의 경위를 아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이 영정은 형태상으로 오른 손은 부채를 쥐고, 왼손은 관대를 잡고 있는 것과, 바닥에 돗자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고승진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서 화승(승려 화가)이 그린 영정으로 추정된다. 화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양 생사당을 철거하고 도상을 환수하고 배접한 후에 쓰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어가가 장차 서쪽으로 피난가려 하였다. 이때에 나는 이조판서로 어명을 받고 먼저 관서(평안도)에 가서 도순찰사를 겸하고 이어서 평양감사를 맡았다. 1595년(선조28)에 우의정에 임명되어 조정에 돌아왔다. 평양에 있는 서리들이 일을 꾸며 이익을 보려는 뜻에서 나에게 노고와 공적이 있다고 핑계하고 인민들에게 쌀과 배를 수합하여 몰래 화공으로 하여금 나의 초상을 그리게 한 다음 사당을 지어 그 초상화를 간직하였다. 1599년(선조32)에 호성공신에 녹훈되어 도상을 그릴 때 함께 이 그림을 개장하여 얼자인 효전에게 주고 얼자가 자손이 없을 경우에는 그 그림을 종가에 돌려주게 하였다. 1605년(선조28) 여름에 직접 기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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